


기록하는 러너는 왜 무너지지 않는가
1월 1일, 남한산성 일출런으로 시작된 해
새벽 여섯 시, 헤드램프의 흰 빛이 발밑 계단만 비춘다. 남한산성 오르막은 아직 숨이 차오르기 전이라 고요하다. 함께 오른 친구들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어둠을 밀어낸다. 영하 10도. 코끝이 시리고 입김이 하얗다. 하지만 추위는 곧 잊힌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하늘이 검은색에서 남색으로, 다시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걸음으로 기다린다.
새해 목표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작년에는 2024km를, 재작년에는 2023km를 달렸다. 연도만큼 거리를 채우는 게 일종의 의례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숫자 대신 풍경을 원했다. 산에 오르고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었다.
정상에 닿았을 때 해는 막 수평선을 넘고 있었다.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손끝이 얼어가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붉은 기운이 하늘에서 마음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는 순간, 추위는 완전히 사라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영하의 산 정상에서 처음 알았다.
올해는 병오년, 말의 해다. 십이지에서 말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상징한다고 한다. 달리는 사람에게는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한 해다. 어떤 박차가 가해질지 알 수 없지만, 기대되고 설렌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그저 바라봤다. 나는 심박수가 평정을 찾아가는 동안, 이 순간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다. 몸이 기억할 것이다. 다음에 다시 이 오르막을 만났을 때, 다리가 알아서 기억해낼 것이다.
왜 러너는 기록하는가
러너의 기록은 빠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기록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은 흔히 기록을 성과의 증거로 생각한다. 5km를 4분 페이스로 달렸다, 월간 200km를 채웠다, 하프 마라톤 기록을 갱신했다. 하지만 그런 수치는 잘한 날만 보여준다. 정작 필요한 건 흔들린 날을 붙잡는 도구다.
3km를 뛰다가 멈췄던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목표 페이스를 포기한 날. 달리기 전부터 몸이 무거웠던 날. 그런 날들을 기록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번 같은 질문 앞에서 헤맨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지?" "나는 왜 예전만큼 못 달리지?"
페이스와 거리와 심박수보다 중요한 건 오늘 왜 힘들었는지를 아는 것이다. 전날 잠을 적게 잤는지,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는지, 식사를 거른 채로 나왔는지.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록은 그 진실을 읽는 법을 가르친다.
잘 달린 날보다 못 달린 날을 더 자세히 적는 사람이 결국 오래 달린다. 그들은 자기 몸을 탓하지 않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기록에는 또 다른 힘이 있다. 기록은 변화를 감지한다. 지난달 같은 구간을 뛰었을 때는 힘들었는데 이번 달엔 한결 가볍다. 이전엔 5km 이후 무너졌는데 이젠 7km까지 페이스가 유지된다. 이런 작은 성장은 매일 달릴 때는 보이지 않는다. 기록을 통해서만 보인다.
기록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컨디션이 나쁜 날엔 '나는 왜 이렇게 못하지'라고 자책하지만, 기록을 펼치면 안다. 지난주에도 비슷했고, 그 다음 주엔 회복했다는 걸. 몸은 직선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파동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천천히 나아간다. 기록은 그 파동의 전체 모양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록은 동기가 된다. 작년 1월 1일의 기록을 올해 1월 1일에 다시 읽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계속 달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시 신발 끈을 묶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달린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아침 10km를 달렸다. 그는 소설가로서의 삶과 러너로서의 삶을 분리하지 않았다. 달리기는 그에게 글쓰기를 지탱하는 리듬이었다.
그는 재능을 믿지 않았다. 재능은 언젠가 바닥나지만 리듬은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거리를 달리고, 같은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는 것. 그 반복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
"나는 달리기를 하며 글을 쓴다." 그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달리는 동안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을 가다듬고,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 오늘도 나는 이만큼 달릴 수 있구나. 오늘도 나는 이만큼 쓸 수 있구나.
달리기는 자기 자신을 매일 확인하는 시간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달리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글쓰기도 달리기도 결국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다. 누가 대신 달려줄 수 없고, 누가 대신 써줄 수도 없다. 매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 그게 달리기이고, 그게 글쓰기다.
그래서 기록은 달리기와 글쓰기를 닮았다. 기록은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내가 읽을 수 있도록 남겨두는 일이다. 빠르게 달린 날의 기록이 아니라, 계속 달린 날들의 기록이 사람을 만든다.
뛰기 전·뛸 때·뛰고 난 후, 1줄 기록의 힘
올해는 조금 다르게 기록해보면 어떨까. 복잡한 러닝 앱의 데이터 대신, 세 줄만 남기는 것이다.
뛰기 전: 오늘 몸과 마음 상태 한 줄
뛸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한 줄
뛰고 난 후: 오늘 러닝이 남긴 감정 한 줄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뛰기 전: 어젯밤 늦게 잤다. 몸이 무겁다.
뛸 때: 3km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었다.
뛰고 난 후: 그래도 끝까지 뛰었다는 게 다행이다.
또 다른 날은 이렇게.
뛰기 전: 오랜만에 컨디션이 좋다.
뛸 때: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뛰고 난 후: 달리고 나니 하루가 가벼워진다.
이 기록의 목적은 잘 쓰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남기는 것이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괜찮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오늘 느낀 것을 한 줄씩 적어두는 것.
시간이 지나면 이 세 줄은 훈련 로그가 아니라 삶의 연대기가 된다. 1월의 기록을 12월에 다시 읽으면, 내가 어떤 계절을 지나왔는지 보인다. 힘들었던 시기, 회복했던 시기, 다시 달릴 수 있게 된 순간들.
기록은 그렇게 나를 지켜본다. 내가 나를 잊지 않도록.
기록하는 러너는 왜 무너지지 않는가
기록하는 러너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무너질 것 같은 날에도 기록은 남는다. "오늘 5km 목표였는데 3km에서 멈췄다. 다리가 아팠다." 그 한 줄이 있으면, 다음 번에 다시 달릴 때 나는 안다. 내가 완전히 무너진 게 아니라 잠시 쉬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달리기가 멈추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부상 때문에, 또는 삶의 다른 우선순위 때문에. 하지만 기록은 남는다. 그리고 그 기록은 다시 달리게 만든다. 내가 한때 달렸던 사람이라는 걸, 다시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기록은 성취가 아니라 존재의 증거다. 오늘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 내일도 여기 있을 것이라는 것.
오늘 당신의 러닝은, 어떤 한 줄로 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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