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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노트

[연재: 한 잔의 와인, 한 편의 철학 ] ① 균형이라는 이름의 와인 – 샤토 마고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by 하루밍 202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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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마고(Château Margaux)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中庸) 사상

균형이라는 이름의 와인 - 샤토 마고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中庸)

 유리잔에 와인이 기울어지는 소리는 언제나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병 입구에서 흘러나온 루비빛 액체가 잔 속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펼쳐질 때, 나는 오늘 하루가 어떤 색이었는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샤토 마고 한 잔이 내 앞에 있다. 보르도 마고 마을의 자존심이자,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우아함을 지켜온 와인. 잔을 코에 가까이 대자 검은 체리와 제비꽃, 그리고 어딘가 흙냄새처럼 깊은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온다. 향은 강렬하지 않지만 분명하다. 마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처럼.

 

 첫 모금을 머금는다. 부드럽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단단한 구조가 살아 숨 쉰다. 타닌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입안을 감싸며 형태를 만들어낸다. 산도는 지나치지 않게, 그러나 또렷하게 잔의 균형을 잡는다. 어느 하나가 튀지 않는다. 모든 요소가 제 자리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이 와인은 완벽함을 주장하지 않지만, 균형 그 자체를 보여준다.

 

 나는 문득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中庸)'을 떠올린다. 그는 "덕은 극단 사이의 중간에 있다"고 말했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용기는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에, 관대함은 낭비와 인색함 사이에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평균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순간에 따라 달라지는 '적절함'의 예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이성에 따라, 분별 있는 사람이 결정하듯이"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기계적 계산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지혜였다.

 

 샤토 마고를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프티 베르도. 네 가지 품종이 매년 조금씩 다른 비율로 블렌딩된다. 어떤 해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90%에 가깝고, 어떤 해에는 75%로 줄어든다. 포도밭의 날씨, 토양의 상태, 포도의 성숙도에 따라 양조자는 매번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정해진 공식은 없다. 그해의 포도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그에 맞춰 조율한다. 이것이 샤토 마고가 250년 넘게 명성을 이어온 이유다. 일관성이 아니라, 매번 최선의 균형을 찾아내는 능력.

 

 우리는 어쩌면 매일 블렌딩을 하며 산다. 일과 쉼, 야망과 만족,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신에 대한 존중. 어떤 날은 더 많이 주어야 하고, 어떤 날은 더 많이 받아야 한다. 너무 베풀면 소진되고, 너무 움켜쥐면 고립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매번 다시 중심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것이 "어렵고 드문 일"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기에 고귀하고 칭찬받을 만하다."

 

 샤토 마고의 여운이 입안에 남는다. 길지만 무겁지 않다. 은은하게 지속되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 와인은 "나를 기억하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머물다 간다. 그 절제 속에 품격이 있다.

 

 창밖을 본다. 오늘 하루도 나는 수많은 선택 앞에 섰었다. 어디에 시간을 쓸 것인가, 누구에게 마음을 열 것인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모든 선택은 일종의 균형 찾기였다.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은 지나쳤고, 어떤 순간은 모자랐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매번 다시 조율하고, 다시 중심을 찾고, 다시 시도하는 것.

 

 샤토 마고는 내게 묻는다. "오늘 당신의 균형은 어땠나요?" 나는 솔직히 대답한다.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찾으려 했습니다." 와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중용이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잔을 비운다. 오늘의 선택과 망설임도 함께 내려놓는 기분이다.
내일도 나는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어디에 시간을 더 쓸지, 무엇을 조금 덜어낼지, 어느 지점에서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할지.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 그때그때 조금씩 조정해 가는 것. 샤토 마고 한 잔이 가르쳐준 건,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안도감이다.

와인잔을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둔다. 하루가 끝났다는 표시처럼.
아직 어딘가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중심은 다시 내 쪽으로 옮겨온 것 같다.
오늘의 균형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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